한낱 미생물 앞에서 무력해진 인생들… 드디어 죽음을 묵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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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낱 미생물 앞에서 무력해진 인생들… 드디어 죽음을 묵상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은 인간이 미약한 존재이며 죽음이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깨우쳐 줬다. 미생물 앞에서 한없이 초라한 인생들이 드디어 죽음을 묵상하게 된 것이다. 중세가 그랬다. 페스트가 만연하면서 그들의 손에 들린 것은 뜻밖에도 ‘죽음의 기술’(Ars Moriendi)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고백했다. “나, 어제 너와 같았으나 너, 내일 나와 같으리라.”(Hodie Mihi Cras Tibi) 3인칭(그들의 죽음)의 죽음을 2인칭(지인·친척·가족)에서 1인칭(나 자신)으로 바꿔 살라는 것이 코로나19의 지엄한 명령이다.



하이패밀리의 많은 콘텐츠는 이런 철학과 세계관의 바탕 위에 개발됐다. ‘천국준비 교실’이 그랬다. 늙어가는 것은 신의 은총이다. 하지만 젊게 사는 것은 삶의 기술이다. 은총과 삶의 기술을 가르치는 교재였다. 이어 ‘해피엔딩스쿨’이 개발됐다.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이 모토였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내일 떠날 것처럼 사랑하자’는 주제를 담은 ‘웰리이빙 스쿨’ 40일 교재도 출간됐다. 내가 죽을 때 내 시신을 운구해 줄 4명의 사람을 남겼는가를 묻는다. 큰 도전이다.



죽음을 연구하면 할수록 신비했다. 죽음과 잠은 하나다. 잠은 ‘깨어나게 될 죽음’(熟眠)이고 죽음은 ‘깨어나지 못할 잠’(永眠)이다. 40일을 굶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잠은 6일을 넘기지 못한다. 그런데도 잠을 소홀히 한다. 그렇게 해서 ‘수면 세미나’가 생겼다. 또 있다. 암 환우들을 돕기 위한 ‘암 파인 땡큐’ 프로그램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말한다. ‘삶이 즐거웠다면 죽음도 즐거워야 하지 않는가.’ 이제 죽음은 선택과목이 아닌 필수과목이어야 옳다. 하나님은 성도의 죽음을 귀중히 보신다고 했다.(시 116:15) 죽음에 눈뜬 그때 우리는 고백할 수 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



송길원-김향숙 부부

[출처] –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