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타인종’이라는 말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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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타인종’이라는 말이 불편하다."

‘타인종 목회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규정된 지 20년이 되어가지만, 그 이름을 들을 때면 유쾌하지가 않다. 아내가 내게 늘 말하듯이 내가 좀 특이한 사람인가 생각도 해보았지만 아마도 나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 것 같아서 이 글을 쓴다. 

‘타인종 목회’라는 말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듣는 사람이 불편하게 느낀다면 좋은 표현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종 목회자라는 말은 한국인이 아니라 타인종을 섬기는 목회자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 그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아마도 과거 한국 목회자들의 모임에서 한국교회를 목회하는 사람들이 다수였을 때, 편의상 한인교회에서 사역하지 않는 사람들을 호칭하던 것이 그대로 굳어진 것은 아닐까 하고 추측할 뿐이다. 그리고 만일 이 말이 적절하지 않다면, 더 늦기 전에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번역의 문제를 먼저 살펴보자.

우리가 사용하는 타인종 목회자, 타인종 목회라는 말은 영어로 Cross cultural, 혹은 Cross racial appointment라는 말을 한국말로 번역한 듯 보인다. 메리엄 웹스터 영어 사전에 따르면, Cross cultural이라는 말은 ‘dealing with or involving two or more different cultures’이다. ‘둘 또는 그 이상의 문화를 포함하거나 다루는’이란 뜻이다. 

이 표현의 핵심은 Cross 라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넘어간다는 뜻이다. 문화적, 인종적 경계를 넘어서 목회하는 사람이나 모임을 말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영어 표현을 왜 구태여 타인종이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일단 ‘타인종’이라는 표현이 갖는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 보자.

첫째로부정적이고 배타적인 느낌을 준다.

‘타’(他)라는 말은 나와는 구별되는 다른 존재를 의미한다. 어감상 상당히 배타적인 느낌을 준다. 내가 우주의 중심에 있고 나 이외의 다른 것들은 모두 ‘타’라는 접두사를 붙여 부르는 것이다. 타인(他人)이나 타종교라는 말이 어떻게 쓰이는지 생각하면 쉽게 느낌이 온다. 

둘째로타인종이라는 말은  대상을 지칭하는 데도 적합성과 보편성을 상실한다.

예를 들어 한인 교회 안에도 다문화가정이 있고, 그들의 자녀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별다른 이유 없이도 한인 교회를 출석하는 외국인들도 있다. 그러면 그 한인 교회 목회자는 타인종 목회자로 불려야 하는가? 타인종 목회자로 분류되는 사람들 가운데 필리핀, 중국, 혹은 일본인 회중을 섬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면 그들은 같은 아시안 인종을 섬기니 타인종 목회자 아닌가?

이렇게 타인종이라는 말은 어떤 대상을 지칭하는 데 적합하지 않거나 보편성을 상실했다고 생각한다.

파울로 프레이리는 말이란 단순한 소리의 울림이 아니라, 철학이며 실천이기 때문에, 어떤 사물이나 집단 또는 사람을 지칭하거나 이름을 붙이는 일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나 집단에 이름을 붙이고, 부르는 이름 속에 그 대상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의식 및 관점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개인적 불만을 토로하자는 것이 아니라, 나름 더 나은 대안을 제안하려는 것이다. 타인종이라는 말 대신 사용 가능한 몇 가지 다른 표현을 제안해 본다.

1. 일단 영어적 표현을 한국말로 번역할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Cross Cultural이라는 말을 한국말로 표현할 적절한 단어가 마땅치 않다. 그 의미를 살리려고 무리해서 번역하려고 할 때, 오히려 더 이상해지고 사용하기 꺼려지게 된다. 언어는 살아있는 생명체 같아서 본래의 자리를 떠나면 그 본래의 의미와 맛을 상실하는 경우가 많다.

그 본래의 의미를 살리고 싶다면, 차라리 영어 발음 그대로 ‘크로스 컬츄럴’이라고 소리 나는 대로 한국말로 쓰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겠다. 택시, 버스, 호텔, 인터넷처럼 말이다.

이어령 씨는 자신이 한 일 중에 가장 최고의 업적이 ‘갓길’이라는 표현을 대중화시킨 것이라고 했다. 누군가 그런 천재적 창의력을 발휘해서 Cross Cultural이란 말을 아름다운 한국말로 바꾸지 못할 것이라면, 차라리 그냥 소리 나는 대로 사용하는 것은 어떤가?

2. ‘다인종 라는 말이 가능하다.

타(他)라고 하는 단어가 다(多)로 바뀐 것이다. 일단 배타적인 느낌을 덜 준다는 뜻에서 훨씬 나은 번역이라고 볼 수 있다. 

문화(culture) 대신에 인종(race)이라는 말이 여전히 부각되는 느낌이 강하다. 인종갈등, 인종차별로 어려움과 분열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가 굳이 인종이라는 말에 방점을 찍을 이유는 없다고 본다.

목회는 인종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이다.

3. 마지막으로 ‘다문화 목회라는 표현이 가능하다.

한국어로 번역할 경우에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추천하고 싶은 표현이다. 이미 한국에서는 더이상 국제결혼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다문화가정’이라 부르고 있다. ‘다문화 목회’, ‘다문화 목회자’라는 말은 듣기에도 부담이 없고, 훨씬 따뜻하며, 포용적인 느낌을 준다.

나 혼자 이런 제안을 한다고 ‘타인종 목회’라는 말이 하루아침에 없어지지 않겠지만, 이 말이 사용된 역사가 그리 길지 않고 현실적으로 적합한 용어도 아니기에, 지금이라도 노력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면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사람의 경우 본인의 이름이 마음에 안 들면 법원에 가서 개명하면 그만이다. 물론 서류상으로 바뀐 이름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정받고 편하게 들리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타인종 목회라는 이름을 바꾸기 위해서 법원에 갈 일도 없고, 전국의 한인 목회자들이 함께 모여서 토의하거나 투표에 부칠 일도 아니다.

우선 타인종 목회자로 불리는 그 대상이자, 이름의 주체인 타인종 목회자들이 앞장서야 한다. 타인종목회자전국연합회와 지역별 타인종목회자연합회에서 논의하여, 타인종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자고 결의하고, 그 이후 발송되는 각종 문서나 이메일에서 바꿔 나가면 된다. 다음에 열리는 타인종목회자전국연합회 연차회의에서 이 안건을 상정해 주면 좋을 것 같다.

그다음은 교단 내 한인 뉴스 담당자들이나 각 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해당 문건이나 게시물의 타인종이라는 표현을 바꾸는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시인 김춘수 씨의 ‘꽃’이라는 시를 들어 봤을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처럼 ‘스스로 있는 자’가 아니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러주고,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한다. 김춘수 시인의 말처럼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은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은 바람에서 이 글을 쓴다.  –  도 은 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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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은배 목사는 북일리노이연회 소속으로 알링톤하이츠에 소재한 Church of the Incarnation United Methodist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