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게 무얼까.
산다는 게 무얼까. 하루하루 삼시 세끼 먹고 호흡하며 사는 게 살아가는 걸까. 분명히 산다는 것은 의미가 있을 건데.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지 잘 모르고 살아간다면 퍽이나 슬픈 생이 될 것 같다. 그래, 산다는 것이, 돼지처럼 먹을 것만 있으면 만족하는 그런 삶이 된다면 그건 사람이 살아가야 할 삶의 목적은 아닐 듯싶다.
코로나19로 인해, 사라지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니 금년도 벌써 8월 중순에 접어들었다. 죽지 않고 호흡만이라도 하면 시간은 그냥 가 준다. 시간이 감은 세월이 간다는 것. 세월은 인간의 삶에 이렇다 저렇다 간섭하지 않고 그저 간다. 살아 있으면 시간에 업혀 살아가는 게 인간이라면, 도대체 살아가는 의미가 무엇인지 난감해 진다.
인간 각자가 가진 생명이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다. 인권(人權·Human rights)이 중요한 건 인간생명이 가진 가치 때문이다. 그 가치란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인간의 목숨이다. 그래서 인간이 태어나면 모두가 축하해 준다. 반면, 인간이 죽으면 모두가 애도해 준다. 한 생명이 지구에 태어났다 다시 우주로 사라짐을 축하, 애도해 주는 거다.
자신의 생명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임을 알 때 자신은 거듭난다. 긍정적인 사람이 된다. 당당해 진다. 희망을 갖는다. 순간순간 살아가는 것이 소중해 진다. 세월을 아끼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생명에 가치를 부여하지 못하면 삶은 지루해 진다. 맥이 빠진다. 부정적이 된다. 남과 비교하게 된다. 매사 짜증을 부리게 된다. 절망에 빠진다.
예수는 생명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음을 말했다. 유대인들이 거룩하게 지키는 안식일에 양이 구덩이에 빠졌다면. 먼저 구해야 한다고 했다. 양의 생명도 그런데 하물며 인간의 생명이라면, 비교가 안 된다. 인간이 만든 율법이 생명보다 더 귀중하지 않다. 배가 고파 안식일에 벼 이삭을 잘라 먹는다 해도, 살아야 하니 그것도 괜찮다 했다.
안식일도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이니, 하늘로부터 받은 생명보다 더 귀중하지 않음을 계속 전파했다. 예수가 전한 복음은 2,000년을 지났으나 지금도 계속 번지고 있다. 예수의 복음이 담긴 성경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다. 왜 예수의 복음은 끊이지 않고 번질까. 그 핵심 중의 하나가 생명의 가치를 가장 귀하게 전한 것에도 있다.
이렇게 가치 있는 인간의 생명이 지난해 12월부터 금년 8월까지 얼마나 많이 죽었는가. 죽음의 원인은 코로나19 때문이다.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 현재도 코로나19로 인해 고통당하는 생명이 얼마나 많은가. 왜, 이런 죽음과 고통이 인간세계에 있어야만 하는가. 인간의 생명이 지금처럼 무가치하게 사라지는 때엔 분명히 하늘의 경고가 있다.
인간의 물질만능주의. 인간의 과학만능주의. 인간의 쾌락만능주의. 돈이면 다 된다는 주의. 인간의 자연파괴. 인간의 자만심. 인간의 권력중심주의. 인간의 욕심, 등등이 하늘을 분노케 하여 이런 전염병이 돌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벨탑을 쌓아 하늘에 이르자던 인간의 욕심과 자만심을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하여 인간의 욕망을 그치게 했던 하나님이다.
수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하늘과 땅과 밤하늘에 떠도는 별들이다. 곧 자연이다. 이들도 수십억년이 지나면 변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들도 생명을 지니고 있다. 그들이 죽어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자연은 인간의 생명을 잉태한 모태(母胎)와도 같다. 그런 자연을 인간은 얼마나 많이 파괴해 왔고 지금도 파괴하고 있는가.
빈익빈부익부(貧益貧富益富). 무전유죄유전무죄(無錢有罪有錢無罪). 돈이 되는 학과만 들어가려고 하는 대학입학생들. 철학이 부재한 세상이다. 인간의 생명도 돈 앞에서는 한 낮 종이 한 조각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세상뿐만이 아니다. 교회도 뒤지지 않는다. 헌금 많이 들어오는 교회. 세습을 하여 아들에게 대를 잇게 한다.
산다는 게 무얼까. 세상을 수용하며 세상을 따라가며 살아야 하는 게 삶일까. 분명히 산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가치가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은 우주하고도 바꿀 수 없는 유일무이한 가치를 지닌다.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으로 생명의 가치를 각인하며 살아야 한다. 삶은 두 번이 아니다. 단 한 번이다. 한 번의 생, 잘 살아야 한다.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가족의 생명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이웃의 생명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이렇게 사는 것이 조물주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길이다. 살아 있는 순간이 짧든 길든, 믿음가운데 예수가 가르쳐준 생명의 가치를 지니며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생명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살아가는 목적이 되어야 한다.
김 명 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