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유병언은 누구인가


그들에게 유병언은 누구인가

 

궁금하긴 합니다. 도주 중인 세모그룹 전 회장 유병언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정동섭 전 침례신학대 교수를 만났습니다. 그는 8년간 구원파에 몸담으며 유병언의 통역을 맡았습니다. 곁에서 ‘일상 속의 유병언’을 겪은 겁니다. 정 교수는 몇 가지 일화를 꺼냈습니다. 사소한 일화가 때로는 전체 그림을 보여주니까요.

#풍경1 : 미국 여행에서 유병언을 수행했을 때랍니다. 시카고에서 예배를 봤답니다. 유씨가 설교를 하고, 정 교수는 영어로 통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유씨의 말이 너무 빠르고 길었습니다. 통역이 불가능할 정도였습니다. 정 교수는 “말을 조금 짧고 느리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유씨는 정 교수를 계속 야단쳤습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나를 그렇게 무시할 수 있느냐?” 그게 요지였습니다. 함께 차를 타고 있던 사람이 정 교수를 편들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답니다.

#풍경2 : 정 교수는 유씨와 한 달간 유럽을 돈 적도 있습니다. 독일에서 구원파 간호사들을 만났습니다. 대부분 중노동으로 힘겹게 돈을 벌어 고국의 가족에게 송금하는 처지였습니다. 그들은 유씨가 온다고 거액을 모아 헌금했습니다. 유씨는 그 돈으로 바이올린 등 고가품을 사느라 수백 마르크의 돈을 일주일도 안 돼 다 써버렸답니다. 그런 유씨를 보며 간호사 대표들이 낙담해 고민에 빠질 정도였습니다. 정 교수는 “그때 유씨에 대한 존경이 실망과 환멸로 바뀌었다”고 했습니다.



#풍경3 : 귀국 후에 정 교수는 유병언의 장인 권신찬씨를 찾아갔습니다. 권씨는 유씨와 함께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를 설립한 인물입니다. “외국에서 본 유 사장의 여러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더니 권씨는 오히려 정 교수를 책망했습니다. “정 형제는 우리 모임에 함께한 지가 벌써 8년이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예수님의 제자들도 당시에는 예수님의 언행을 깨닫지 못하다가 나중에야 깨달았다고 한다. 그런데 유 사장의 행동을 지금 다 이해하려 하면 어떻게 하느냐?” 권신찬씨는 사위 유병언의 행동을 ‘예수의 행동’에 빗댔습니다. 정 교수는 거기에 충격을 받고, 결국 구원파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듣고 나니 더 궁금합니다. 구원파에 유병언은 대체 무엇일까요. 이단 전문가 심우영 목사를 만났습니다. 그는 20년 넘게 현장을 누비며 기독교계 이단의 실태를 조사·연구하고 있습니다. 구원파 이야기를 나누다가 심 목사는 ‘이꼴파’란 말을 꺼내더군요.

2000년 문화관광부 종교 실태조사 연구보고서에도 ‘권신찬은 초창기부터 사위 유병언을 몸(교회)의 입으로 성령에 의해 세움을 받은 자(기름 부음 받은 자)라고 치켜세웠다. 그래서 유병언은 하나님이라는 이꼴파가 생겨났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유병언=하나님’이라고 보는 측근 그룹을 구원파에서 내부적으로 ‘이꼴파’라고 불렀다는 겁니다. 경기 안성 금수원에 모인 구원파 신도들은 “10만 성도 다 잡아가도 유병언 회장은 안 된다”며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말 유병언을 누구로 보는 걸까요.

국내에 있는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 명상단체의 교주들은 종종 주장합니다. ‘나는 하나님이다’ ‘재림 예수다’ ‘구세주다’ ‘생불(生佛)이다’라고 말입니다. 나름 정교한 교리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제게는 구별법이 하나 있습니다. 교주가 자식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봅니다. ‘살아 있는 재림 예수’도 자식에 대한 집착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교회를 물려주고, 재산을 물려주고, 직책을 물려주고, 때로는 교회가 키운 기업까지 물려줍니다. 신은 자신의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했습니다. ‘이 시대의 재림 예수들’도 그것만은 흉내 내기 힘든 그림의 떡인가 봅니다.


백성호    중앙일보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