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통의 “주홍글씨”


 

 

간통의 “주홍글씨”

“당신의 키스는 정말 달콤하다. 당신의 그을린 몸과 굴곡진 히프를 사랑한다. 희미한 불빛에 비친 두 개의 매혹적인 부분(가슴)을 감싸는 모습도 사랑한다.” 

지난 2009년 미국 정가를 발칵 뒤흔든 e메일이다. 장본인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 마크 샌포드. 그가 남미 아르헨티나에 살고 있는 연인에게 보낸 메일이 언론에 공개돼 파문을 일으킨 것. 갑자기 연락을 끊고 잠적했던 샌포드는 며칠 후 혼외정사를 시인하기에 이른다. “처음엔 순수한 만남이었는데… 1년 전쯤부터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그후 두 번 비밀리에 아르헨티나를 찾아가 그녀를 만났다. 이번이 세 번째다.” 

샌포드는 공화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명망이 높았던 인물. 그런 그가 간통에 휘말려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와 함께 간통죄가 화제에 올랐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선 형사처벌 대상으로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주지사라고 예외일 수는 없을 터. 그러나 샌포드는 용케 법망을 비켜갔다. 간음한 장소가 아르헨티나여서다. 

기소가 어렵게 되자 주의회를 장악하고 있던 민주당은 주지사를 탄핵재판에 회부했다. 이때 샌포드 측이 유행시킨 말이 있다. ‘맨 먼저 돌을 던져라(cast the first stone)’다. 미국서는 ‘성급한 판단을 내리다’는 뜻으로 흔히 쓰이는 관용구다. 

출처는 성경(요한복음).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간음한 여인을 두고 예수와 격돌한다. 당시 율법학자들은 거의 바리사이파 출신이어서 둘은 한통속. 겉으로는 민족주의를 표방하지만 식민 종주국 로마와 은밀히 결탁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 한다. 

모세 율법에는 간음하다 들키면 돌로 쳐 죽이라고 나와 있는데 예수의 생각은 어떠냐고 슬쩍 떠본다.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하면 율법을 어겼다는 올가미를 씌워 고발할 요량이었던 것. 그렇다고 법대로 처형하라고 할 수도 없고. 그야말로 딜레마에 빠진 예수. 그러나 아무 대꾸 없이 몸을 굽혀 땅바닥에 무언가를 쓰고 있는데.

율법학자들이 대답을 재촉하자 예수는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이런 말로 꾸짖는다. “너희들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어쨌거나 예수는 ‘돌로 쳐라’고 했으니 율법을 어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칠 자격을 인정받고 쳐야지 죄인이 이 여자를 돌로 치면 오히려 살인을 한 꼴이 돼 다들 꽁무니를 뺀 것이다. 

샌포드 측은 성경구절에 빗대 ‘죄 없는 자가 날 탄핵하라’고 을러댔다. 이 같은 그의 전략이 먹혀 들었는지 재판은 흐지부지 끝났다. 

요즘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간통죄 처벌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선언해 파장이 일고 있다. 미국은 그러나 간통을 범죄로 다스리는 곳이 사우스캐롤라이나를 비롯해 아직도 21개주에 이른다. 매사추세츠와 아이다호 오클라호마 미시간 위스콘신 등은 중범으로 처벌한다. 뉴욕주는 B급 경범이지만 미시간은 최고 종신형이다.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 보자. 예수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던 여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간통은 ‘크라임(crime)’ 곧 범죄다. 예수는 그러나 이 여인의 행위를 ‘신(sin)’으로 봤다. 영어 원문엔 그렇게 나와 있다. 도덕적 또는 종교적인 죄악이다. 범죄는 형기를 마치면 그만이지만 죄악은 평생 따라다니는 주홍글씨다. 그래도 간통죄가 없어졌다고 좋아할 건가.

박 용 필   (중앙일보 LA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