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본질로 돌아가자"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예배당 문이 닫히는 사태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경험이다.
앞으로 예배당 문이 열린다고 해도 여러 면에서 교회가 어려워질 것임이 분명하다. 교회는 ‘필수적 사업체’(essential business)가 아니고, 따라서 문을 닫아야 한다는 뉴욕 주지사의 행정명령은 당연하면서도 충격적이었다.
전쟁 중에도 교회는 필수적인 곳이고, 고난과 환란의 때일수록 교회가 하나님의 위로와 도우심을 제공하는, 세상 그 어느 곳보다 필수적인 곳인데, 화창한 봄 날씨가 시작되는 계절에 뉴욕의 교회들은 필수적인 사업들이 아니라고 문을 닫으라 한 것이다.
후러싱제일교회는 몇 년 전부터 온라인 생방송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상예배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평상시의 모든 예배와 기도회를 실시간 방송을 했다.
어려울 때일수록 정신 차리고 목회를 잘하고 교회를 지켜야 한다는 목적과 함께 어떻게 해서라도 교인들과 긴밀한 연락을 하고자 매일 짧은 영상을 만들어서 내보내면서 목사가 일방적으로 무엇을 교인들에게 제공해주는 식의 목회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상 예배를 잘하는 교회가 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때에 개인은 물론 가정에서 스스로 예배드릴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분간 50명 이상 모이는 모임이 공공위생상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어, 당분간 온라인 예배가 지속될 것이고, 교회들의 재정적 어려움이 커질 것이다.
토니 몰간(Tony Morgan)은 이와 같은 현실을 반영하여 아래와 같이 말했다.
1. 아날로그(analogue)에서 디지털(digital)로의 전환
2. 가르침(teaching)에서 훈련(equipping)
3. 모임(gathering)에서 연결(connecting)
4. 글로벌(global)에서 로칼(local)
5. 사역자 고용 비용을 줄이고 사역 연결
6. 다양한 사역에서 사역의 단순화로의 전환
우리 이민교회도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미국 이민교회를 보면 한인들의 이민이 많이 들어오던 70년대는 교회가 교인들 삶의 중심이었다. 신앙생활만이 아니라 코뮤니티 종합센터의 역활을 했다. 90년대에 이르러 생활 수준이 향상되고 교회들도 부흥하여 대형교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예배도 세대별로 구분된 예배가 확장되고, 각양각색의 프로그램이 도입되어, 확장의 한계가 없을 것 같았다. 예배당을 크게 지으면 교인이 그만큼 예배당에 들어왔다. 그러나 개교회들이 커지면서 공교회성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대형교회는 말할 것 없이, 중형교회 목사들도 제왕적인 목회를 성공적인 모델로 여기는 일이 생겨났다.
그러다가 20여 년 전부터 교세가 줄기 시작하고, 전도의 문이 막히고, 난공불락 같던 기성 교단들이 분열의 진통을 겪는 중에 코로나 팩데믹 사태가 일어났다.
이 위기는 교회가 본질을 회복하도록 하나님이 주신 기회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비본질적인 일에 분주했던 교회에 이제는 본질에 집중하라고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그것은 이곳도 저곳도 아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예배자가 되어야 함을 뜻한다. 언제 어디에 있어도 전도와 선교적 삶을 살아낼 수 있어야 함을 뜻한다.
교회는 이제 개인과 가정이 예배와 선교적 삶을 살아가는 중심이 되도록 그 일을 돕는 역할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것은 30여 년 전 쎌 교회 운동이 추구하고자 했던 것인데, 당시에는 그 중요성이 절실하지 못했었는지 모른다.
이번 코로나 사태 이후를 준비하면서 세대별, 언어별로 분리되었던 예배의 담을 허물어야 하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이민 교회들은 신앙 공동체가 아니라 분열된 신앙의 이산가족들이다. 각 세대의 문화와 편의성을 존중한다는 의도이지만 실제로 한 교회 공동체인데 공유하는 찬송과 찬양이 없다. 웬만한 이즈가 되는 교회를 보면 각각 자기가 편한 언어와 문화별로 분산되어서 예배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것을 따로 한다.
세대별, 언어별 전임사역자들이 있어야 제대로 된 교회라는 전제가 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무엇을 갖춘 교회라고 할 때, 각자 주어진 공간에 들어가서 자기들끼리 잘하면 되는 교회가 되어버린다. 그러다가 사역자가 바뀌게 되면 난리가 난다.
이런 현상은 재정적으로 넉넉한 교회들에 주어진 고질적인 병폐다. 소규모의 교회를 보면 오히려 모자라고 어렵기 때문에, 가족의 중요성과 공동체의 역할을 더 건강하게 유지하기도 한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중형에서 대형교회 목사들은 건축회사 사장(CEO) 역할을 하면서 세대별, 언어별 하청업자인 사역자들을 고용하는 목회를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 교회가 지켜내야 할 가장 기본이 되는 ‘필수적인 것’(essential)은 예배다.
예배당에서 예배드리지 못하는 이와 같은 때를 위해서가 아니라, 성도들이 언제 어디서라도 예배자로 살기 위해 갖추어야 할 것들이 있을 것이다.
후러싱제일교회 목회팀은 현재 성경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필수적 성경구절 50개와 언제 누가 시작을 해도 함께 부를 수 있는 찬송가 50개를 선정해 외우도록 하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더욱 하나님과의 교제를 강화하는 기도의 훈련이 필요하다.
세대 간 분열을 만들어낸 여러 예배에 대해서도 재고하고자 한다.
주일학교 중고등부도 각각 흩어지는 목회가 아니라, 주일예배도 가족들과 함께 드리고 세대 간 성경공부에도 더 집중하려고 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의 문제가 우리 자녀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신앙생활을 중단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의 교회 신앙교육이 그렇게 프레임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많은 한인 이민교회의 경우 부모들은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이 좋고, 소위 부흥한다는 잘 나간다는 교회를 찾아다니는 것이 신앙생활 잘하는 것인 양 착각한다. 하지만 영어권 사역자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사역자들이 준비한 프로그램에 (수동적으로) 열심히 참여하는 교회 생활에 익숙해지면 고등학교 졸업 후 성인이 되어서도 능동적으로 방향을 잡지 못하고 방황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의존적인 신앙교육의 한 결과이다.
어른들의 신앙생활도 청소년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예배를 포함한 신앙생활 전반에 있어 평신도들이 리더쉽을 회복해야 하는데, 현실은 교회의 “일”을 신학공부를 한 전문가들을 고용하여 신앙생활을 리드하도록 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평신도 신앙운동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평신도 신앙운동으로 시작된 교단의 목사들이 가톨릭 사제들처럼 옷 입는 것으로 “성직”을 구별하려는 문화가 팽배하다.
또 교단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교인들의 삶의 자리와 너무 거리가 멀다. 개체교회로부터 연회와 총회에 이르기까지 회의 전문가들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에 대한 기득권을 독점한다. 현장이 소외된 행정 중심의 제도적 교회로서는 교회의 본질을 지켜내기 어렵다.
유대교를 보면 예루살렘 성전 제사 중심에서 디아스포라의 2,000년 역사까지 온 세계에 흩어져 회당을 통한 말씀으로 살아가는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어, 회당 자체를 키우는 데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 신앙의 중심이 되도록 하기 위한 역활을 했다. 가정이 신앙의 중심이 되도록 회당은 신앙의 모든 것을 제공해주고 검증해 주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가정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식일 기도로 시작하는 가정 식사와 14살이 되면 “말씀의 아들, 딸”이 되는 예식을 통해 모세 5경을 외움으로 신앙적으로 성인이 되는 성인식이다. 이는 세상으로 들어가 책임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을 목표 삼는 것이다.
2. 교회는 예수의 십자가를 선포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초대교회에 예수님의 사람들은 스데반 순교 이후 예루살렘에 머무를 수 없게 되어 사마리아로 가고 이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사도 바울이 제자를 훈련하던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림을 받게 된다.
초대교회는 흩어져 박해 가운데에서도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었고, 십자가의 복음을 선포하며, 예수를 따르기 위한 제자의 삶을 살아갈 때,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림을 받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즉, 그리스도의 가르침, 기독교의 근본, 그 본질적인 삶을 초대교인들이 살아낸 결과,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을 얻은 것이다.
결국, 이 정신이, 종교개혁의 역사에서 개혁을 위해 내세운 구호가, “근원으로(Ad Fontes) 돌아가자(Back to the Sources).”, “성경으로 돌아가자.”라는 것이었다. “Ad Fontes”로부터 “Sola Scriptura(오직 성경)”라는 가치가 나왔다.
초대 감리교운동 “순회사역자(circuit rider)”들은 십자가만을 의지하고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며 “홀로도 해내는 개척정신(independent frontier mentality)”으로 교회를 세웠다.
마이클 호튼은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선포되지 않는 교회, 십자가의 은혜가 선포되지 않는 교회, 더 나아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와는 상관없어진 현대 교회를 고발한다. 다시 말해 그는 복음의 본질이 선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세상에서 고난받고 찌든 교인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오로지 교인들의 심기를 살피는 설교, 마치 예수가 세상 성공의 모델이나 된 것처럼 성공 신화를 설파하며 예배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선포되지 않는 상황은 없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그리스도인들의 근거 없는 선민사상과 우월의식으로 무장하여, 거룩함과 소명은 저버리고, 죄의식마저 사라진 모습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그것은 복음으로 돌아가야만 회복될 수 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가 고백되고, 십자가의 은혜가 선포되고, 교회의 본질, 복음의 본질이 회복되어야 한다.
십자가 없는 언어의 연금술, 복음이 아니라 기복의 신앙, 본 회퍼가 말한 것처럼 죄의 고백과 회개가 없는 싸구려 은혜를 선포했던 교회의 회개가 필요하다. 그래야 복음이 드러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기 위해선 성경만 암송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과 신앙의 핵심인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복음의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는 좀 더 단순해져야 한다.
교인들이 자기가 살아가는 현장에서 십자가를 기억하며 홀로 또는 가족이 예배를 드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말을 타고 여기저기 다니며 전도하여 불일 듯 부흥했던 감리교운동의 원동력이 회복될 것이다.
이를 위해 교회는 십자가의 은혜와 복음을 기억하고 살아가도록 말씀, 찬양, 기도의 제자훈련의 장이 되어야 한다.
주일은 세상에서 살며 경험한 십자가 보혈의 은혜와 부활의 승리 이야기들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축제가 되고, 교회의 전문 사역자들은 세상에 나가 영적 전투에 임해야 할 교인들에게 최고의 영적 무기를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코로나 사태는 우리에게 전 세계적인 아픔과 죽음, 불안과 공포를 주었다. 회복의 기간이 절대 짧지 않을 것이며, 그 회복은 그냥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 것이다. 세상도 변하겠지만 교회도 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 변화의 목표는 돌아가는 것이다. 복음으로 돌아가고, 십자가로 돌아가고, 초대교회로 돌아가고, 종교개혁으로 돌아가고, 감리교운동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김 정 호 목사 (뉴욕 후러싱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