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로 들어온 ‘세상 갈등’… 이슈·입장 따라 ‘사분오열’

교회도 갈등이 범람하는 ‘초갈등사회’의 파고를 피하지 못했다. 성탄절인 지난달 2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선 두 개의 예배가 열렸다. 북쪽 광장에선 성탄절연합예배 사무국 등 진보단체들이 주관한 성탄절 예배(왼쪽), 남쪽 광장에선 보수 기독교 단체가 예배를 드렸다. 서윤경 기자

한국교회로 들어온 ‘세상 갈등’… 이슈·입장 따라 ‘사분오열’

#1. 지난달 25일 서울 광화문광장. 오후 3시가 가까워지자 남쪽 광장에 있던 경찰들이 북쪽 행사장 쪽으로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곳엔 대형 가설무대 앞으로 의자 500여개가 놓여 있었다. 경찰은 행사장 주위를 펜스로 둘렀다. 그 앞을 지키는 경찰도 추가로 투입됐다.



성탄절인 이날 광화문광장에선 두 개의 예배가 열렸다. 남쪽에선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범투본)가 성탄절 예배를 드렸다. 북쪽에선 성탄절연합예배사무국과 성서한국,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등이 공동으로 성탄절 예배를 진행했다.



경찰 관계자는 “남쪽 광장에서 예배를 마친 사람들이 청와대로 행진하기 위해 이동할 예정”이라며 “경로상 북쪽 광장을 지나갈 텐데 마찰이 있을 것으로 우려돼 병력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잠시 후 남쪽에 있던 사람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채 북쪽 광장으로 접근해 왔다. 긴장감이 감돌았다. 남쪽 광장에서 온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펜스 안 북쪽 광장 사람들을 흘깃 쳐다봤다. 북쪽 광장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애써 이들의 시선을 외면했다. 펜스 안에 있던 30대 회사원 김모씨가 낮게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펜스 밖에 계신 분 중에 우리 교회 교인들도 있을 겁니다.” 이념을 앞세운 사회적 갈등의 파고는 광장을 넘어 교회까지 덮쳤다.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앞에서 보수 단체가 드린 ‘2019 자유 대한민국 전국 연합 성탄축제’ 모습. 연합뉴스



#2. “이젠 설교하기도 무서워요.” 지난 5일 만난 서울 강서구 A교회 B목사는 주일예배가 두렵다고 했다.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로 국론이 분열됐을 당시 30대 성도가 자신에게 항의한 뒤부터다. 설교 때 국론 분열상을 언급하며 조 전 장관 논란을 언급했을 뿐인데, 청년은 “세상사를 교회로 가져오지 말라면서 왜 설교 때 정치 이야기를 하느냐”고 따졌다. B목사가 조 전 장관을 비판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B목사는 “예전에도 설교 때 세태를 언급하면서 정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제는 같은 이야기를 해도 달리 해석될 수 있다는 걸 알고 놀랐다”고 말했다.



성도들끼리도 생각의 차이로 서로 날을 세우는 일이 많다 보니 성도 간 대화도 조심스러워졌다. 경기도 이천 C교회 성도 D씨는 “우리 교회에서 불문율이 된 게 있다”면서 “정치 얘기, 이념 얘기는 하지 말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회 내 갈등은 이념 갈등에 그치지 않는다. 세대 간 갈등도 심화하고 있다. 공동체 의식이 강해 자비량으로 봉사활동을 했던 기성세대와 달리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젊은 세대들은 봉사에 소극적이다. 이 때문에 갈등을 빚다 주방 등의 경우 봉사자 대신 외부업체에 용역을 주는 교회도 있다.



빈부 갈등도 교회 안에서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서울 강남의 E교회 F목사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하소연했다. 성도들이 주택 소유자와 무주택자로 나뉘어 정부 정책을 두고 설전을 벌이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는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겠다면서 18차례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최근에는 갈등의 영역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확장되고 있다. 단체 채팅방은 정치적 선동의 장이 됐다. 일부 보수적 성도는 보수단체의 광화문광장 집회 소식을 교회 성도 채팅방에 올리며 집회 참석을 독려하거나 보수 성향 인사들의 개인 방송 링크를 올리곤 한다. 소통과 대화의 장이 됐던 온라인 공간은 무응답의 공간이 됐다.



“얼마 전 진보단체 집회 내용을 단톡방에 올렸다가 호되게 당한 적이 있어요. 그때 사람들이 왜 침묵하는지 알게 됐죠. 그렇다고 방에서 나오지도 못해요. 그러면 괜한 오해와 의심을 살 것 같아 그냥 내버려두다시피 하죠.” 이천의 C교회에 다니는 40대 성도 G씨의 이야기다. 같은 교회 50대 성도 H씨도 비슷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예전엔 여전도회나 성가대 단체 채팅방에서 기도제목도 나누고 어려움도 공유했는데 이젠 말 그대로 ‘동물원’이 됐어요. 글을 올리는 사람은 일부고 나머진 창살 밖에서 보기만 하거든요.”



신학자와 전문가들은 교회가 갈등의 파고를 넘어 화해의 길을 모색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려면 교회부터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명수 서울신학대 교수는 “교회는 그동안 개인의 가치나 인권, 상대방 존중 등 자유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훈련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서 “교회부터 훈련하면 세상을 바꾸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대 간 갈등도 마찬가지다. 기성세대가 일방적으로 ‘이기적’이라는 단어로 젊은 세대를 폄훼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최명화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신만의 영역의식이 강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하지 않는 ‘고양이’가 1980~90년대생인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이라며 “과거 희생과 복종, 훈련으로 특징 지어지는 ‘개’의 방식을 고집해선 안 된다”고 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