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도 빛난 ‘믿음의 홈런왕’… 행크 에런 추모 물결
극심한 인종 차별 이겨내고 베이브 루스 홈런 기록 경신
“타석에 섰을 때 천사들에게 둘러싸인 채 하나님이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것도 날 위협할 수 없다고 믿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명예의전당에 헌액된 전설의 홈런왕 행크 에런(사진)이 지난 22일(현지시간) 86세를 일기로 별세하면서 야구사에 남긴 그의 기록과 인성, 신앙이 재조명되고 있다. 에런은 1954년 데뷔 후 23년간 선수생활을 하면서 통산 755홈런 3771안타 2297타점을 기록했다. 야구 역사상 20시즌 연속 20홈런을 달성한 유일한 선수다.
1974년 4월 8일 베이브 루스의 종전기록(714개)을 경신하며 715호 홈런을 쏘아올린 장면은 메이저리그 팬들이 뽑은 야구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 2위에 랭크돼 있다. 당시 에런은 백인들의 우상이자 야구 영웅이었던 루스의 통산 홈런 기록에 다가서면서 극심한 인종차별과 협박에 시달렸다. 소속팀이었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구단에는 인격 모독과 은퇴를 종용하는 협박 편지 100만여통이 쏟아졌다. 그는 살해 위협을 피하기 위해 경기 전날 경기장에서 잠을 잤지만, 필드에선 묵묵히 자신의 플레이를 펼쳤다.
새 홈런왕으로 등극한 직후 가진 인터뷰는 그의 견고한 신앙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회자된다. 엄청난 압박 속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에런은 “타석에 섰을 때 천사들에게 둘러싸인 채 하나님이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것도 날 위협할 수 없다고 믿었다”고 답했다.
다른 인터뷰에서는 “홈런 기록을 세운 날 집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라고 고백했다.
에런은 1976년 은퇴 후 자선활동을 펼치며 선교적 삶을 보여줬다.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흑인들의 목소리도 대변했다. 에런의 별세 후 미국 전역에서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로 “에런은 편견의 벽을 깨는 게 우리가 하나의 국가로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려줬다. 그는 미국의 영웅이었다”고 추모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